길이 끊어진 곳에 학교를 세우다
박상주가 만난 사람-필리핀 오지에서 봉사하는 최기진·최정연·송현자씨
박상주 | 제41호 | 20071222 입력
물질보다 가치, 돈보다 여유, 권력보다 자유를 추구하며 유별나게 사는 한국인. 이들을 찾아 언론인 박상주씨가 세상 속으로 떠났다. 남미를 시작으로 아프리카·동남아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랑을 전파하는 한국의 봉사활동자를 만난다.
1. 한국JTS 봉사단원인 최기진(가운데 줄 왼쪽에서 둘째)·최정연(셋째)·송현자(넷째)씨 등이 필리핀 민다나오 부키드논주 말리복군 산루이스읍 오지마을인 카가후만의 미니 학교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현자씨 오른쪽의 스포츠머리를 한 사람이 한때 공산반군 NPA의 지역 사령관을 지낸 다투 만사이사얀이다. |
11월 10일 불교 정토회 소속 국제구호단체인 ‘한국 JTS(Join Together Society)’의 최기진(39), 최정연(38), 송현자(36)씨 세 사람과 함께 산루이스읍 카가후만 마을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민다나오 북부의 중심지인 카가얀데오로에서 4륜구동차로 험한 비포장도로를 3시간 정도 달리자 그나마 길이 끊겼다.
차에서 내려 비탈진 산길을 3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이따금씩 뿌려대는 소낙비 때문에 가뜩이나 가파른 산길이 질퍽질퍽 미끄럽기까지 했다. 오늘은 그나마 시원한 날씨라고 했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거의 매일 이런 오지 산행을 한다는 기진씨 일행 앞에서 차마 힘든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이 한 생애쯤은 봉사의 삶으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한다’. JTS의 ‘3대 지향점’입니다. JTS민다나오의 사업은 전기와 수도가 없고, 교육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죠. 2003년 6월부터 2007년 11월 현재까지 부키드논·라나오 델 노르테·라나오 델 수르 등지의 33개 마을에 53칸의 교실을 지어줬어요. 책걸상과 문구류 등 교육기자재와 함께 곡식 건조장, 농사용 소도 지원하고 있고요.”(기진씨)
2. 몇 년 전까지만 해도 NPA 게릴라들이 출몰하던 말리복 산길에서 만난 말 탄 청소년. 3. JTS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카가후만 마을 우물가 풍경. 빨래하는 아낙 옆에 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있다. 4.산루이스를 지날 때 한 원주민 부부가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을 신기한 듯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
“불교환경교육원에 들어간 직후인 그해 3월부터 서울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법륜 스님의 100일 법문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으로 체계적인 불교수업을 받았지요. 억겁의 삶 속에서 이 한 생애쯤은 봉사의 삶으로 다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끊임없는 오르막길이었다. 이따금 허벅지까지 잠기는 계곡물이 길을 가로막았다. 토마토 상자를 어깨에 멘 농부, 노새 등에 짐을 실은 청년, 수풀 속에서 얼굴만 빠끔 내민 벌거숭이 어린이들이 이곳도 사람 사는 곳임을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가려는 카가후만 마을은 NPA 지역사령관을 지낸 다투 만사이사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입니다. 만사이사얀은 이 지역 사람들에겐 ‘살아 있는 전설’이죠. NPA 사령관 시절 무용담이 아직도 주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비단뱀이 매복 중인 그의 몸을 칭칭 감았는데 만사이사얀이 뒤로 벌렁 드러누우면서 맨손으로 뱀을 제압했다는 등의 이야기지요.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카가후만에 ‘그린 파라다이스’ 건설을 꿈꾸고 있는 인물입니다.”(정연씨)
경상대 사범대 독어교육과(91학번) 출신인 정연씨는 90년대 개발 붐으로 사라져 버린 ‘마산 6·25 피란민 수용소’에서 공부방 활동을 하면서 베풂의 기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정연씨는 그곳에서 빈민들의 생활상에 충격을 받고는 중국·몽골 등지로 먼 나눔의 길을 다녔다고 했다.
농기구보다 학용품 원하는 교육열
카가얀데오로를 출발한 지 6시간여 만에 목적지인 카가후만 마을에 도착했다. NPA 시절 정부군과의 대치 때문이었을까. 마을은 급경사의 좁은 길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정상에 1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홀딱 옷을 벗은 코흘리개 아이 하나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며 누나의 품에 안겼다. 아낙네가 빨래하는 우물가에서는 벌거벗은 어린 소녀들이 목물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우리의 발길이 머문 곳은 그 마을에서 가장 번듯한 집이었다. 작달막한 체구지만 옹골찬 카리스마를 풍기는 한 사내가 집에서 나오면서 인사를 했다. 한때 정부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바로 그 만사이사얀 전 지역사령관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점심으로 내왔다.
우리 토종 고구마 못지않게 토실토실하면서도 달았다. JTS 단원들과 만사이사얀이 고구마를 먹으면서 한동안 진지한 대화를 했다. 귀동냥을 해 보니 노트와 연필 등 학생들 학용품 추가 지원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듯했다. 30여 분 지났을까. 이야기를 마친 일행이 학교 시설을 둘러보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곳 학생들의 학구열이 대단한 것 같아요. 방금 회의에서도 만사이사얀이 농기구보다 학용품을 더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군요. 오늘 오면서 노트 160권, 연필 216자루를 챙겨와 다행이네요.”(현자씨)
현자씨는 한국외국어대(90학번)를 졸업한 뒤 해운회사와 수출회사 등을 다녔다. 지난해 3~12월 정토회 불교대학을 다니던 중 “내가 어디에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화두에 매달리다가 JTS 활동에 합류했다고 했다.
온 마을 주민 손으로 만든 학교
카가후만 학교는 교실 두 칸, 교사 숙소 두 칸으로 이루어진 예쁜 목조건물이었다. 빨강·검정·노랑·하양 페인트로 울긋불긋 장식해 멀리서도 잘 보였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 반년 가까이 11㎞의 산길로 철근·시멘트·모래자갈·목재 등 건축자재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지고 날라 만든 학교입니다. 주민들의 애정이 클 수밖에 없지요.”(기진씨)
하산하는 길 중간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듯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원주민의 집 처마에서 한동안 비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30여 분 만에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그러는 사이 어둠이 밀려왔다. 차를 세워둔 곳까지 되돌아왔을 때 사방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캄캄한 어둠에 빠져들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산중을 빠져나오면서 기진씨와 정연씨, 현자씨가 진정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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